처음 신용카드를 만들려고 했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통장에는 늘 빠듯하게 돈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고, 눈앞의 할인 혜택과 할부 기능이 무척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은행 창구에 앉아 상담을 받다 보니, 신용카드는 단순히 ‘편리한 카드’가 아니라 ‘돈을 빌려 쓰는 도구’라는 사실이 크게 다가졌습니다. 특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처럼 소득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이 카드가 얼마나 조심해서 다뤄야 할 물건인지, 상담을 마칠 때쯤엔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졌습니다.
기초수급자가 신용카드를 발급받기 어려운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카드사는 “이 사람이 카드로 쓴 돈을 제때 갚을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지, 과거에 돈을 빌렸다가 늦게 갚은 적은 없는지, 대출이나 카드 사용 이력이 어떤지를 꼼꼼하게 살핍니다. 이 과정을 ‘신용 심사’라고 부릅니다.
기초수급자는 국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는 만큼, 대체로 소득이 낮거나 불안정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이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연체가 있었거나, 반대로 신용카드를 써본 경험 자체가 적어서 금융 이력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일반적인 신용카드를 바로 발급받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능성이 막힌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과 예외가 존재합니다.
기초수급자가 신용카드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
카드사가 신용카드를 발급할 때 기본적으로 보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 정기적인 소득이 있는지
- 신용 상태가 얼마나 안정적인지
먼저 정기적인 소득입니다. 대부분의 카드사는 매달 일정 금액 이상의 월급, 사업소득, 연금소득 등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기초수급비는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지급되는 공적 지원금입니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이 돈이 “추가로 쓴 카드 대금을 넉넉하게 갚을 수 있는 소득”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심사 과정에서 기초수급비를 소득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더라도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고 판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신용 상태입니다. 과거에 대출을 받았다가 연체를 했는지, 통신비나 공과금을 자주 늦게 냈는지, 기존 카드 대금을 밀린 적은 없는지 등이 모두 기록으로 남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토대로 신용점수가 매겨지고, 카드사는 이 점수를 보고 “이 사람에게 카드를 내줘도 괜찮을까?”를 판단합니다.
기초수급자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 과거에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으며 연체 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
- 카드나 대출을 거의 이용해본 적이 없어 신용 이력이 거의 없는 경우
연체가 많으면 당연히 심사에 불리합니다. 그런데 신용 이력이 거의 없는 경우도 문제입니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돈을 잘 갚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근거 자체가 부족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별도의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전혀 없는 기초수급자라면 일반적인 신용카드를 발급받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여기서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 대안과 예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담보 신용카드: 목돈이 있다면 가능한 선택
기초수급자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접근 가능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담보 신용카드입니다. 담보 신용카드는 말 그대로 “내 돈을 담보로 맡기고, 그 범위 안에서 쓸 수 있는 신용카드”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 100만 원을 예금 형태로 맡겨두고, 그 돈을 담보 삼아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카드사는 “어차피 이 사람에게 문제가 생겨도 100만 원이 은행에 묶여 있으니, 그 안에서는 위험이 크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일반 신용카드보다 소득과 신용 조건이 다소 낮더라도 발급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기적인 소득이 많지 않더라도, 일정한 예금이 있다면 심사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 예치금이 담보 역할을 하므로, 카드사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적습니다.
- 카드를 성실히 사용하고 대금을 연체 없이 잘 갚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신용도가 조금씩 개선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일정 금액의 목돈이 필요합니다. 생활비로 쓰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수십만 원, 수백만 원을 예치금으로 묶어두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 예치되어 있는 돈을 마음대로 꺼내 쓰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용하지 못하는 돈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담보 신용카드는 다음과 같은 사람에게 어울립니다.
- 생활은 빠듯하지만, 오랜 기간 모아둔 예금이 어느 정도 있는 경우
- 앞으로 신용을 차근차근 쌓아두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경우
- 카드를 꼭 써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고, 충동적으로 쓰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경우
각 은행이나 카드사마다 담보 신용카드의 최소 예치금, 이자율, 한도책정 방식이 다를 수 있으므로, 실제로 가입을 고민한다면 여러 곳에 상담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체크카드와 후불교통 기능: 부담을 줄인 선택지
신용카드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카드를 쓰는 데 큰 불편이 없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체크카드입니다. 체크카드는 결제할 때마다 연결된 통장에서 바로 돈이 빠져나가므로, 빚을 지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래서 신용카드보다 발급 기준이 훨씬 낮고, 기초수급자도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편입니다.
여기에 ‘후불교통’이나 소액 신용 기능이 붙은 하이브리드 형태의 카드도 있습니다. 이 카드는 기본적으로 체크카드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아주 소액 결제를 할 때에 한해 신용처럼 나중에 결제하는 기능이 제공되기도 합니다.
이 방식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은행 계좌만 있으면 발급해주는 경우가 많고, 일반 신용카드보다 심사 기준이 훨씬 완화되어 있습니다.
- 후불교통 기능은 소득이 많지 않아도 허용되는 사례가 꽤 있습니다.
- 신용 한도가 매우 작게 설정되므로, 큰 금액을 무리해서 사용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카드로는 고가의 물건을 할부로 구매한다든지, 여행 경비를 한 번에 긁어 쓰는 식의 사용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버스, 편의점 등 자잘한 일상생활 위주로 카드를 쓰려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 정도가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후불교통 기능이 붙은 체크카드는 이런 사람에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 신용카드까지는 필요 없지만, 교통카드 기능이 합쳐진 카드를 쓰고 싶은 경우
- 혹시 모를 긴급 상황에 대비해 아주 작은 신용 여유를 갖고 싶은 경우
- 카드를 처음 써보면서, 스스로 지출을 어느 정도 관리할 자신이 있는 경우
추가 소득이 있다면 일반 신용카드도 가능할 수 있음
기초수급자라고 해서 모두가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는 정부 지원금과 더불어 아르바이트, 단시간 근무, 소규모 사업 등으로 일정 수준의 추가 소득을 얻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카드사는 일정 금액 이상의 월 소득이 꾸준히 들어오면, 기초수급자라 하더라도 신용카드 발급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꾸준히 들어오는 돈인지”와 “증빙이 가능한지”입니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잠깐 하고 끝냈다거나, 현금으로만 받는 소득처럼 공식 서류로 증명하기 어려운 소득은 인정받기 어려운 편입니다.
추가 소득을 바탕으로 신용카드를 신청하려면 보통 다음과 같은 서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 재직증명서나 근로계약서
- 급여명세서 또는 통장 입금 내역
- 사업자등록증, 사업소득 원천징수영수증 등(개인사업자일 경우)
이와 함께, 과거 연체 기록이 심하지 않고 최근 몇 년간 성실하게 금융 생활을 유지했다면, 카드사 입장에서도 신용카드를 발급해줄 근거가 생깁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한도는 일반 직장인에 비해 낮게 책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방식은 다음과 같은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 기초수급자로 지정되어 있지만, 자활을 위해 꾸준히 근로활동을 하는 경우
- 월급이 많지는 않아도 매달 일정하게 들어오는 직장이 있는 경우
- 향후 취업이나 자립을 준비하면서 신용 이력을 미리 쌓아두고 싶은 경우
신용카드를 고민할 때 꼭 짚어봐야 할 점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별개로, 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내 상황에서 신용카드를 갖는 것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입니다. 기초수급자로 생활하는 입장에서는 이 질문이 특히 더 중요합니다.
신용카드는 분명 편리한 도구입니다. 할부, 포인트 적립, 각종 할인 혜택 등은 생활비를 절약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손에 없는 돈을 미리 끌어다 쓰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수입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도구를 잘못 사용하면, 순식간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용카드를 고민할 때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차분히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 매달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
- 현재 지출이 수입보다 많지 않은지, 이미 부담되는 빚이 있는지
- 카드를 쓰게 되었을 때, 한도 내에서만 쓰고 제때 전액 상환할 자신이 있는지
- 체크카드나 현금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지는 않은지
또한, 카드사와 은행마다 신용카드 발급 기준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곳은 비교적 엄격하게 보는 반면, 어떤 곳은 특정 조건에 한해 조금 더 유연하게 심사를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본인의 상황에서 가능한 선택지를 알고 싶다면, 직접 상담을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다만 상담을 받을 때에는 “무조건 카드를 만들겠다”는 마음보다 “내 상황에 맞는 안전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습니다.
한편, 신용카드를 바로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도, 금융 생활을 통해 신용을 조금씩 쌓아갈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공과금이나 통신비를 연체 없이 잘 납부하는 것, 체크카드를 꾸준히 사용하면서 통장 관리를 성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지나면 신용 정보에 긍정적인 기록이 쌓이게 됩니다. 이런 작은 습관들이 모여 나중에 신용카드를 만들거나 대출을 이용해야 할 때 더 나은 조건으로 심사를 받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기초수급자에게 신용카드는 선택하기 까다로운 도구입니다. 당장 눈앞의 편리함과 혜택만 보고 결정하기보다는, 자신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범위를 찬찬히 돌아보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신용카드를 손에 쥐는 것보다, 카드를 쥔 뒤에도 흔들림 없이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값진 일이라는 점을 마음 한켠에 두고 고민해보는 편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