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나서, 남은 밤을 어떻게 할지 한참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냥 먹기에는 조금 질리고, 그렇다고 또 삶기만 하자니 심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마스카포네 치즈가 떠올랐습니다. 진한 커피와 부드러운 치즈, 그리고 고소한 밤을 함께 넣으면 꽤 근사한 디저트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만들었던 것이 지금 이야기하려는 밤티라미수입니다. 한입 먹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밤의 달콤함과 커피 향, 크림의 부드러움이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이후로는 밤이 생길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메뉴가 되었습니다.

티라미수는 이탈리아에서 온 디저트로, 이름은 “기운을 북돋워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에스프레소에 적신 과자와 부드러운 치즈 크림이 층을 이루는 디저트인데, 여기에 제철 밤을 더하면 한층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구조는 그대로 두고, 크림 속에 밤 페이스트를 섞어 깊은 단맛과 고소함을 더한 것이 밤티라미수입니다. 만들기에 엄청 복잡한 디저트는 아니지만, 차근차근 과정을 지키면 완성도 높은 디저트를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밤티라미수란 무엇인가

밤티라미수는 말 그대로 밤을 넣어 변형한 티라미수입니다. 일반 티라미수는 마스카포네 치즈 크림과 커피에 적신 레이디핑거(손가락 모양의 과자), 그리고 위에 뿌리는 코코아 파우더가 기본입니다. 여기에 밤 페이스트를 더하면 몇 가지 특징이 생깁니다.

첫째, 단맛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설탕의 날카로운 단맛과 달리, 밤은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을 가지고 있어서 전체적인 맛이 더 고급스럽게 느껴집니다. 둘째, 향이 풍부해집니다. 커피의 쓴 향과 코코아 향 사이에 밤 특유의 고소하고 따뜻한 향이 섞이면서 계절감이 살아납니다. 셋째, 식감이 부드럽지만 묵직합니다. 마스카포네 크림만 있을 때보다 크림이 조금 더 든든해지는 느낌이 있어 한 조각만 먹어도 만족감이 높습니다.

기본 재료와 방법은 티라미수와 비슷하지만, 밤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어느 정도 섞는지에 따라 맛이 꽤 달라집니다. 시판 밤 페이스트를 사용해도 좋고, 직접 밤을 삶아 갈아 사용해도 좋습니다.

밤티라미수에 필요한 재료

밤티라미수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커피 시럽, 마스카포네 밤 크림, 그리고 레이디핑거와 코코아 파우더입니다.

커피 시럽을 만들 때는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나 진한 드립 커피를 사용합니다. 양은 대략 200ml 정도면 4~6인분 기준으로 충분합니다. 여기에 설탕을 넣어 쓴맛을 조금 눌러주고, 원한다면 럼이나 브랜디와 같은 술을 아주 조금 넣을 수 있습니다. 술은 향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넣지 않아도 티라미수를 만드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스카포네 밤 크림의 중심은 마스카포네 치즈입니다. 이탈리아산 상온 보관 치즈가 아니라, 냉장 보관되는 마스카포네 치즈를 사용해야 합니다. 부드럽게 풀어 쓰기 위해 미리 실온에 잠시 두었다가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에 달걀 노른자와 설탕, 생크림을 섞어 부드러운 크림을 만들고, 밤 페이스트를 더해 풍미를 완성합니다.

달걀 노른자는 그대로 쓰지 않고, 위생을 위해 중탕으로 가볍게 익혀 사용하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른자가 약 70~80도 정도의 온도에서 살짝 익으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설탕과 함께 계속 저어주면 색이 연해지고, 약간 걸쭉해진 노른자 크림이 됩니다.

밤 페이스트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중에 판매되는 밤 페이스트나 밤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직접 만드는 것인데, 이때는 껍질 벗긴 삶은 밤을 약 200g 정도 준비하여 따뜻할 때 으깨고, 설탕과 우유를 조금 섞어 부드럽게 갈아줍니다. 설탕은 밤의 단맛에 따라 양을 조절하면 됩니다. 이때 완전히 미세하게 갈면 크림에 자연스럽게 섞이고, 일부러 약간 덩어리를 남기면 크림 사이사이에 밤 조각이 씹히는 식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생크림은 휘핑용을 사용하고, 유지방이 너무 낮지 않은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휘핑했을 때 적당히 뿔이 서는 정도로만 올려야 크림이 부드럽게 유지됩니다. 너무 단단하게 휘핑하면 나중에 섞을 때 덩어리가 생기고, 완성된 크림도 텁텁해질 수 있습니다.

이 밖에 레이디핑거 과자는 커피를 머금었을 때 쉽게 부드러워지는 것이 특징인데, 없다면 카스테라나 스펀지케이크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위에 뿌릴 코코아 파우더는 설탕이 섞이지 않은 순수 코코아 파우더를 사용하는 것이 맛의 균형을 맞추는 데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통밤이나 밤 조림이 있다면 장식용으로 준비해 두면 완성도가 한층 올라갑니다.

커피 시럽 만들기

먼저 커피 시럽을 만들어 식혀 두어야 합니다. 뜨거운 상태로 사용하면 레이디핑거가 너무 빠르게 풀어지고, 크림도 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나 진한 커피 200ml에 설탕 2큰술 정도를 넣습니다. 너무 달게 느껴진다면 설탕 양을 줄여도 됩니다. 잘 저어 설탕을 완전히 녹인 뒤, 술을 사용할 계획이라면 럼 또는 브랜디를 1~2큰술 정도 더합니다. 알코올이 부담스럽다면 이 단계는 생략하거나, 바닐라 향을 조금 넣어 향만 더해도 좋습니다.

설탕이 모두 녹으면 상온에서 완전히 식혀 둡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얼음물을 담은 큰 그릇에 볼을 올려두고 식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레이디핑거를 적실 때 커피가 미지근하거나 차가워야 과자가 적당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점입니다.

마스카포네 밤 크림 만드는 과정

마스카포네 밤 크림은 여러 단계를 거쳐 완성됩니다. 순서를 잘 지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듭니다.

먼저, 중탕용 물을 냄비에 끓입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그 위에 열에 견디는 볼을 올립니다. 볼이 물에 직접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볼 안에 달걀 노른자와 설탕을 넣고, 거품기로 계속 저어줍니다. 설탕이 녹아가면서 노른자가 점점 부드러워지고 색이 연해지며, 약간 걸쭉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손으로 만졌을 때 너무 차갑지 않고 따뜻하다 느껴지면 중탕에서 내려 식혀줍니다.

이제 실온에 두어 부드러워진 마스카포네 치즈를 넣고 잘 섞습니다. 덩어리가 남지 않도록 거품기나 주걱으로 골고루 섞어 줍니다. 이때 바닐라 익스트랙을 한 작은술 정도 넣어 향을 더합니다. 어느 정도 섞였다면 준비해 둔 밤 페이스트를 넣고 다시 한 번 고르게 섞어 줍니다. 색이 균일하게 섞이고, 크림이 너무 뻑뻑하지 않다면 잘 된 상태입니다. 만약 너무 되직하다면 나중에 합칠 생크림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지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으로, 차가운 생크림을 깨끗한 볼에 넣고 휘핑합니다. 손거품기를 사용할 때는 팔 힘이 조금 들지만,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동 거품기를 사용하면 더 편리하지만, 너무 세게 휘핑하면 금방 과하게 올라갈 수 있으므로 중간 속도로 조절합니다. 뿔이 살짝 서다가 고개를 숙이는 정도의 상태, 즉 완전히 단단하지 않고 부드러운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마스카포네와 밤이 섞인 크림에 휘핑한 생크림을 2~3번에 나누어 넣습니다. 한 번에 모두 넣으면 섞는 동안 생크림의 공기층이 많이 죽을 수 있습니다. 주걱을 사용해 아래에서 위로 떠 올리듯이 부드럽게 섞어줍니다. 너무 세게 저으면 공기가 빠져버려 크림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섞이기만 하면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마스카포네 밤 크림은 한 번 맛을 봐서 단맛과 질감을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밤 페이스트를 조금 더 추가해도 괜찮습니다.

레이디핑거와 크림 쌓기

모든 준비가 끝났다면 이제 용기에 레이디핑거와 크림을 차곡차곡 쌓을 차례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레이디핑거를 커피 시럽에 얼마나 적실지, 그리고 층을 얼마나 고르게 만드는지입니다.

먼저 준비한 직사각형 용기나 유리 접시를 꺼냅니다. 레이디핑거를 하나 집어 커피 시럽에 앞뒤로 1~2초 정도만 담갔다 꺼냅니다. 과자가 커피를 빠르게 흡수하기 때문에 오래 담가두면 부서지거나 으깨지기 쉽습니다. 이렇게 적신 레이디핑거를 용기 바닥에 빈틈이 최대한 없도록 가지런히 깔아줍니다.

그 위에 마스카포네 밤 크림을 절반 정도 올려줍니다. 주걱이나 스패튤라를 이용해 위를 평평하게 펴주되, 너무 눌러서 공기층이 죽지 않도록 부드럽게 밀어줍니다. 가장자리까지 크림이 잘 채워지면 다시 한 번 레이디핑거를 커피 시럽에 적셔 두 번째 층을 만듭니다.

두 번째 레이디핑거 층을 깔았다면 남은 마스카포네 밤 크림을 모두 올립니다. 크림의 윗면을 매끄럽게 다듬으면 나중에 코코아 파우더를 뿌렸을 때 모양이 더 예쁘게 나옵니다. 장식용 통밤이나 밤 조림이 있다면 이 단계에서 표면에 간격을 두고 올려 두어도 좋습니다. 너무 많이 올리면 자를 때 불편할 수 있으니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숙성과 마무리 과정

티라미수는 바로 먹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숙성시키면 맛이 훨씬 좋아집니다. 크림과 레이디핑거, 커피 시럽이 서로 섞여 맛이 깊어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표면을 정리한 용기에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어 최소 4시간 이상은 두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하룻밤 정도 두었다가 다음 날 먹었을 때가 가장 먹기 좋은 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동안 레이디핑거는 커피와 크림을 적당히 흡수해 촉촉해지고, 크림은 전체적으로 조금 더 단단해져 자를 때 모양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먹기 직전, 체를 이용해 위에 코코아 파우더를 골고루 뿌립니다. 이때 코코아 파우더가 너무 두껍게 쌓이지 않도록, 하지만 군데군데 빈 곳이 생기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코코아 파우더를 미리 뿌려 두면 냉장고 안의 습기 때문에 표면이 눅눅해질 수 있으니 가능하면 먹기 직전에 뿌리는 편이 좋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팁과 응용법

밤티라미수를 만들 때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좋지만, 상황과 취향에 맞게 조절하면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달걀 노른자를 중탕으로 익히는 과정은 가능한 생략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위생적인 면에서도 안심이 되고, 크림이 더 안정되어 분리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만약 달걀 사용이 불편하다면, 노른자를 생략하고 마스카포네와 생크림, 밤 페이스트만으로 크림을 만들어도 됩니다. 다만 이 경우 농도와 풍미가 조금 달라지므로, 설탕 양과 생크림의 휘핑 정도를 조절해 자신에게 맞는 비율을 찾아야 합니다.

밤 페이스트는 시판 제품을 사용하면 훨씬 편리합니다. 시판 밤잼이나 밤 스프레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으며, 너무 묽다면 마스카포네 양을 조금 늘려서 농도를 맞추면 됩니다. 반대로 직접 만든 밤 페이스트가 너무 되직하면 우유나 생크림을 한두 큰술 정도 추가해 부드럽게 만들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레이디핑거 대신 카스테라나 스펀지케이크를 사용할 때는, 빵 자체에도 어느 정도 단맛이 있기 때문에 커피 시럽의 설탕 양을 조금 줄여도 균형이 맞습니다. 케이크를 자를 때 두께를 일정하게 맞추면 층이 더 예쁘게 쌓입니다.

알코올은 선택 사항입니다. 향만 조금 내고 싶다면 술의 양을 아주 소량으로 줄이거나, 아예 넣지 않고 바닐라 익스트랙이나 견과류 향이 나는 향료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술 맛에 민감한 사람이 있거나 어린이와 함께 먹을 계획이라면 알코올을 넣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보관할 때는 뚜껑이 잘 닫히는 용기나 랩을 사용해 냉장고에 넣고, 3일 이내에 먹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크림의 수분이 빠지고 과자 층이 너무 물러질 수 있습니다. 남은 티라미수는 잘라서 접시에 덜어 낸 뒤, 따뜻한 커피나 우유, 차와 함께 곁들이면 색다른 간식 시간이 됩니다.

밤티라미수는 계절감이 있는 디저트이지만, 냉동 보관된 밤이나 시판 밤 페이스트를 사용하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을 때 한번 만들어 두었다가 가족이나 지인이 방문했을 때 조용히 꺼내서 함께 나누어 먹으면, 준비하는 시간과 정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 듭니다. 커피 향과 함께 퍼지는 밤의 고소한 풍미 덕분에 식탁 위 공기가 조금 더 따뜻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