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도장에 갔을 때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바닥보다 사람들의 허리였습니다. 허리마다 색이 다른 띠가 매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흰색,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검은색까지 줄지어 앉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검은띠는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선생님이 수련을 마치고 검은띠를 살짝 풀어 보여주며 “이게 단증이 있는 사람만 맬 수 있는 띠”라고 설명해 주셨을 때, 머릿속에는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검은띠라고 다 같은 검은띠가 아니라면, 도대체 태권도 단증은 어떻게 나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올라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태권도에서 검은띠를 맨다는 것은 단순히 색이 바뀐다는 뜻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그 실력을 단계로 표현한 것이 바로 ‘단’과 ‘품’입니다. 단증은 이 단과 품을 공식적으로 기록해 주는 자격증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막상 단증을 가진 사람들끼리도 “유단자냐, 유품자냐”라는 말이 오가다 보면 처음 듣는 사람은 더욱 헷갈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태권도의 단과 품, 그리고 단증에 대해 차근차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유단자와 유품자의 차이

먼저 많이 들어보는 말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유단자와 유품자입니다.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기 쉽지만, 기준을 알고 나면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유단자는 말 그대로 ‘단’을 가진 사람입니다. 보통 검은띠를 메고 있고, 1단 이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을 부릅니다. 흰띠, 노란띠, 파란띠, 빨간띠 같은 색 띠를 지나 검은띠를 매게 되면 처음 받는 단이 1단이고, 그때부터 유단자가 됩니다. 이후 2단, 3단, 4단처럼 숫자가 올라가도 모두 유단자라고 부릅니다.

유품자는 ‘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품은 나이가 어릴 때 받는 검은띠 단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태권도에서는 만 15세 미만 수련자가 일정한 실력을 갖추었을 때, 어른처럼 ‘단’을 주지 않고 ‘품’을 줍니다. 그래서 1품, 2품, 3품, 4품처럼 올라가게 됩니다. 띠 색깔은 검은색과 빨간색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 보통 ‘홍흑 띠’라고 부릅니다.

이때 가끔 오해가 생깁니다. 어떤 설명에서는 유품자를 “검은띠를 딴 후 더 높은 단을 획득하지 않고 그대로 머무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하는데, 실제 태권도 제도에서는 그렇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품은 단과 다른 개념이라 단을 안 올렸다고 해서 유품자라고 부르지 않고, 처음부터 품 단증을 받은 청소년 수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유품자는 나이가 어려서 품 단증을 받은 사람이고, 유단자는 단 단증을 가진 사람입니다.

품과 단의 연결 관계

품과 단은 완전히 따로 놀지 않습니다. 태권도에서는 품으로 시작해서 나이가 차면 자연스럽게 단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기준은 나이입니다.

태권도에서 보통 다음과 같이 운영합니다.

  • 만 15세 미만: 단 대신 1품, 2품, 3품, 4품처럼 품 단증을 발급합니다.
  • 만 15세 이상: 1단부터 4단까지 단 단증을 발급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품 단증을 가진 사람이 만 15세가 되면 자신의 품이 자동으로 단으로 전환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2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만 15세가 되면 2단에 해당하는 자격을 인정받는 식입니다. 이 덕분에 어릴 때부터 꾸준히 수련해 온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유단자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품은 나이가 어릴 때의 ‘준단계’ 같은 역할을 하고, 일정 나이가 되면 품에 해당하는 단으로 바뀌어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태권도 단증의 진행 순서

태권도에서 단과 품은 모두 단계가 있습니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올라가려면 정해진 기간 동안 수련을 하고,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기본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은 흐름을 따릅니다.

1품 또는 1단에서 시작하여, 점점 높은 품과 단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 1품 또는 1단
  • 2품 또는 2단
  • 3품 또는 3단
  • 4품 또는 4단
  • 5단
  • 6단
  • 7단
  • 8단
  • 9단

태권도에서는 보통 9단까지를 최고 단수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10단 같은 표현이 언급된 적도 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9단까지만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단이 올라갈수록 기술 실력뿐 아니라 인성, 지도 능력, 태권도에 대한 공헌도 등도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5단을 넘어가면 단순히 수련생이 아니라 지도자이자 선배로서 후배들을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 단과 품을 얻기 위한 기본 과정

단증은 단순히 오래 다녔다고 해서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심사를 통과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과정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먼저 수련 기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1단을 취득한 뒤 2단 심사를 보려면 일정 기간 이상 계속 수련을 해야 합니다. 이 기간은 도장과 단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단이 올라갈수록 필요 기간이 길어집니다. 1단에서 2단으로 올라갈 때보다 3단에서 4단, 4단에서 5단으로 올라갈 때 걸리는 시간이 훨씬 더 깁니다.

정해진 기간을 채웠다면, 다음은 승급 심사입니다. 심사에서는 여러 항목이 평가됩니다. 품새를 정해진 동작과 순서대로 정확하게 수행하는지, 겨루기에서 기술과 안전을 지키며 싸울 수 있는지, 격파를 통해 힘과 집중력을 보여 줄 수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보게 됩니다. 도장마다 강조하는 부분은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본기와 예의, 그리고 태도입니다.

품 심사도 큰 틀에서는 단 심사와 비슷하지만, 나이와 체격을 고려해 난이도나 요구되는 수준이 조절됩니다. 어린 수련자들이 품 단증을 받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이길 줄 아는 법뿐 아니라 지킬 줄 아는 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기원 단증과 단체별 차이

태권도 단증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국기원입니다. 국기원은 우리나라에 있는 태권도 중앙도장으로, 세계적으로 공인된 태권도 단증을 발급하는 기관입니다. 도장에서 단증을 받았을 때, 그 단증에 국기원 이름과 마크가 찍혀 있다면 국기원 공인 단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태권도에는 여러 국제 단체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올림픽 경기와 관련된 세계태권도연맹(WT) 계열, 그리고 다른 계열의 국제태권도연맹(ITF) 등이 있습니다. 단체가 다르면 사용하는 품새나 경기 규칙이 조금씩 달라지고, 승급 기준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2단이라도 어느 단체의 단증인지에 따라 심사 내용이나 수련 방식에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만 옳고 나머지는 틀리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다니는 도장이 어떤 단체와 연결되어 있는지, 국기원 단증을 발급하는지, 그리고 지도자가 어떤 방향으로 수련을 이끌어 가는지 파악하는 일입니다. 이를 알면 나중에 다른 도장으로 옮기거나, 해외에서 활동할 때도 스스로 자신의 단증을 설명하고 활용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단증이 의미하는 것

많은 사람이 태권도를 시작할 때 검은띠를 목표로 삼습니다. 하얀 띠에서 출발해 줄줄이 색이 바뀌다가 결국 허리에 감긴 검은띠를 매는 순간, 누구나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단증은 단지 허리에 두르는 띠의 색깔을 바꿔 주는 종이 한 장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수련하면서 흘린 땀과 눈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반복해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선 시간들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유품자든 유단자든, 1단이든 9단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단증의 숫자가 아니라 그 단계를 준비하는 동안 어떤 태도로 수련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태권도의 기본 정신인 예의, 인내, 극기, 백절불굴 같은 말들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단증을 준비하는 매일의 자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지도자는 “단증은 실력을 증명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태도를 증명하는 것에 가깝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도장에서 처음 검은띠를 본 그날처럼, 누군가는 여전히 높은 단을 가진 선배의 띠를 바라보며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태권도 단증의 구조와 의미를 알고 나면, 그 띠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조금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허리에 맬 띠를 떠올리며, 오늘 한 번 더 발차기를 해 보고 품새를 반복해 보는 마음이 조금은 더 단단해질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