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계단을 따라 언덕을 오르다가 저 멀리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왔을 때, 머릿속이 잠깐 멍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진이나 책에서 수도 없이 보았던 건물이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이상하게도 크기나 화려함보다 “딱 맞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무엇 하나 튀지 않고, 그렇다고 밋밋하지도 않은 묘한 균형감이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그 건물이 바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왜 이 건축물을 두고 “비례의 교과서”라고 부르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과 관련해서 자주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황금비”입니다. 많은 책과 영상에서 “파르테논 신전은 황금비로 설계된 건물이다”라고 설명하곤 합니다. 하지만 관련 연구를 따라가다 보면, 이 말이 완전히 맞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오히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여러 해석과 오해가 뒤섞여 있는 주제에 가깝습니다.

황금비가 무엇인지부터 차근차근

황금비는 보통 그리스 문자 φ로 나타내며, 값은 대략 1.618 정도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어떤 선을 둘로 나누었을 때 전체 길이와 긴 쪽의 비율이, 긴 쪽과 짧은 쪽의 비율과 똑같이 되는 특이한 비입니다. 이 비율을 이용하면 “황금 직사각형”이라고 부르는 직사각형을 만들 수 있고, 이 직사각형을 반복해 쪼개다 보면 소용돌이 모양의 “황금 나선”과도 연결됩니다.

사람들은 이 황금비가 유난히 보기 좋고 조화로운 비율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림, 건축, 심지어 사람의 얼굴까지 황금비에 가깝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르테논 신전도 그 대표적인 예로 자주 언급됩니다.

파르테논 신전에 황금비가 쓰였다고 하는 이유

파르테논 신전과 황금비를 연결하는 주장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 신전 정면의 너비와 높이를 재어보면 1.618에 가깝다고 본다.
  • 기둥의 높이와 굵기, 기둥 사이 간격, 상부 구조의 높이 등 세부 치수들 사이에서 황금비에 가까운 수치를 찾는다.
  • 파르테논 신전 사진 위에 황금 직사각형과 황금 나선을 겹쳐 그려서, 형태가 잘 맞는 것처럼 보여준다.

이런 설명만 들으면, 마치 고대 그리스 건축가들이 황금비를 정확히 알고, 그 비율을 기준으로 자처럼 재가며 신전을 설계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신전의 아름다움이 “황금비 = 최고의 미적 비율”이라는 믿음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는 중요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설계 도면이나 문헌 어딘가에 “파르테논은 황금비에 따라 설계했다”라는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황금비를 알고 있었을까

황금비 자체는 고대부터 어느 정도 인식되고 있던 비율입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나, 후대의 수학자 유클리드의 저작에서도 지금 우리가 말하는 황금비와 연결되는 기하학적 구성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비율을 건축 설계의 주된 기준으로 삼았다”고 볼 만한 증거는 부족합니다.

현대 연구자들은 파르테논 신전의 치수를 실제로 측정하여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신전 정면의 비율이 황금비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측정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꽤 달라진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높이를 지붕의 삼각형 꼭대기까지 보느냐, 아니면 그 아래의 엔타블러처 상단까지 보느냐에 따라 비율이 바뀝니다. 게다가 측정값이 황금비와 완벽하게 일치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비슷해 보이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파르테논 신전과 황금비의 관계”를, 고대인들의 의도라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신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황금비를 억지로 끼워 맞힌 결과로 보는 편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먼저 황금비를 중요하게 여기고 난 뒤, 그에 맞는 예시를 찾아낸 것에 가까운 셈입니다.

고대 그리스 건축가들이 진짜로 쓴 비례 개념

황금비의 의도적 사용 여부를 떠나, 파르테논 신전이 비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 건축물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 비례의 방식이 현대에서 말하는 황금비와는 다소 다릅니다.

당시 건축에서 가장 기본이 된 것은 복잡한 무리수 비율보다, 이해와 계산이 쉬운 정수 비례였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비율들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 1:2, 2:3, 3:4 처럼 간단한 정수비
  • 4:9처럼 분모와 분자가 모두 정수인 비율

이런 비율들은 설계와 시공에서 다루기 쉬웠습니다. 줄자나 눈금이 복잡하지 않던 시대에, 정수 비례는 돌을 깎고 기둥을 세우는 과정에서 매우 실용적인 기준이었습니다. 실제로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높이와 지름, 기둥 사이 간격, 바닥 폭과 전체 길이 등을 조사해 보면 이런 정수 비례에 가까운 값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즉, 파르테논 신전의 비례 체계는 “나는 황금비로 만들겠다”라기보다, 사람들이 다루기 쉽고 계산하기도 편한 정수비를 정교하게 조합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보이도록 설계한 결과라고 보는 편이 더 현실적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진짜 비밀, 착시 교정

파르테논 신전이 특히 놀라운 이유는, 단순히 수치상 비율이 맞아서가 아니라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지”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때 사용된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착시 교정입니다.

기둥이 살짝 불룩한 이유, 엔타시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자세히 보면, 완전히 곧은 원통이 아니라 가운데 부분이 아주 살짝 불룩합니다. 이런 형태를 엔타시스라고 부릅니다. 사람 눈은 아주 긴 곧은 기둥을 볼 때, 중간이 조금 들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오히려 중간을 미세하게 불룩하게 만들어, 멀리서 보면 “딱 곧게” 보이도록 한 것입니다. 눈으로 볼 때의 인상을 기준으로 형태를 조정한 셈입니다.

바닥이 평평해 보이도록 일부러 구부린 스타일로베이트

신전이 서 있는 바닥, 즉 스타일로베이트도 사실 완전히 평평하지 않습니다. 가운데 부분이 아주 조금 위로 올라간 완만한 곡선 형태입니다. 만약 바닥을 진짜로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었다면, 멀리서 볼 때 가운데가 오히려 내려앉아 보이는 착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빗물이 중앙에 고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닥을 살짝 볼록하게 만들어, 보는 사람 눈에는 평평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지도록 했습니다.

기둥이 안으로 모이는 듯한 미세한 기울기

신전의 겉을 둘러싼 기둥들은 완전히 수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쪽으로 갈수록 약간 안쪽을 향해 기울어져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완전히 수직으로만 세웠다면, 멀리서 볼 때 기둥들이 바깥으로 벌어져 보이거나 건물이 느슨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기둥을 살짝 안쪽으로 기울여, 건물 전체가 한 점으로 모이는 듯한 안정감을 준 것입니다.

모서리 기둥을 더 두껍게 만든 이유

신전의 네 모서리에 있는 기둥은 가운데 기둥보다 조금 더 두껍습니다. 하늘과 주변 풍경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서리 기둥은, 같은 굵기라 하더라도 실제보다 더 가늘어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건축가들은 이런 착시를 미리 알았는지, 모서리 기둥의 지름을 살짝 키워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균일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세밀한 착시 교정은 단순히 “비율이 맞다”는 차원을 넘어, 사람이 실제로 서서 바라볼 때 어떻게 느끼는지를 깊이 고려한 결과입니다. 숫자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섬세한 감각이 건축에 녹아 있는 셈입니다.

파르테논 신전과 황금비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지금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 비율이 황금비와 비슷해 보이는 부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하지만 고대 건축가들이 황금비를 핵심 설계 원리로 사용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오히려 정수 비례와 착시 교정 같은 다른 건축 원리들이 확실하게 확인됩니다.

결국 파르테논 신전과 황금비의 관계는, “고대 그리스인이 처음부터 황금비를 목표로 설계했다”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황금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파르테논을 그 대표적인 예로 보고 싶어 했던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논의가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파르테논 신전이 왜 그렇게 조화롭고 안정적으로 느껴지는지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례와 기하학, 인간의 시각과 감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황금비라는 개념은 이 질문들을 던지게 만드는 흥미로운 출발점 역할을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단지 하나의 신비로운 숫자가 숨어 있어서가 아니라, 정수 비례, 섬세한 착시 교정, 구조적 안정성, 종교적 의미와 도시의 상징성 같은 요소들이 촘촘하게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기둥 하나, 돌 하나 뒤에 수많은 고민과 계산, 그리고 “어떻게 해야 가장 아름답게 보일까”라는 치열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