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통장을 만들고 은행 창구에 앉아 있었을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통장에는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 찍혀 있었지만, 은행 직원이 “정기적금으로 모으실래요, 아니면 정기예금으로 넣으실래요?”라고 물어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둘 다 안전하게 돈을 모으는 상품이라고는 들었지만,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무엇을 골라야 할지 헷갈렸기 때문입니다. 창구 앞에서 괜히 모르는 티 내기 싫어서 대충 대답하고 나왔지만, 집에 돌아와서야 하나씩 찾아보며 차이를 정리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해해 두었더라면 이후에 돈을 모을 때 훨씬 덜 헤맸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은행에서 말하는 정기적금과 정기예금은 둘 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매우 안정적인 저축 상품입니다. 다만 돈을 넣는 방식, 언제 필요할 돈인지, 이자가 어떻게 붙는지에 따라 성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사용법이 다른 도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정기적금: 꾸준히 채워 가는 저금통

정기적금은 약속한 기간 동안 매달 일정 금액을 넣는 방식의 저축입니다. 시작할 때 “12개월 동안 매달 20만 원을 넣겠다”처럼 기간과 금액을 정하고, 그 약속을 지키면서 돈을 모아 나갑니다.

정기적금의 가장 큰 특징은 돈을 한 번에 많이 넣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 가지고 있는 돈이 거의 없어도, 매달 일정 금액만 낼 수 있다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처음 나와 월급을 받기 시작한 사람이나, 용돈을 조금씩 모아 보고 싶은 사람에게 많이 추천되곤 합니다.

정기적금의 이자는 매달 늘어나는 원금에 맞춰 조금씩 계산됩니다. 예를 들어 1년 동안 매달 10만 원을 납입한다고 해 보겠습니다. 첫 달에 넣은 10만 원은 12개월 동안 이자가 붙지만, 마지막 달에 넣은 10만 원은 사실상 1개월치 이자만 받게 됩니다. 같은 금리라 해도 처음부터 한꺼번에 넣은 돈보다 이자가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같은 금리라면 정기예금이 정기적금보다 만기 때 받는 총이자가 더 많은 경우가 많습니다.

정기적금의 장점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 처음에 목돈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매달 일정 금액을 납입하며 자연스럽게 저축 습관을 만들기 좋습니다.
  • 정해진 기간 동안 꾸준히 유지하면, 만기 때 꽤 쓸 만한 목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흔한 부분은 만기 전에 해지하는 경우입니다. 중간에 해지하면 약속한 금리보다 훨씬 낮은 금리가 적용되거나, 사실상 거의 이자를 못 받고 원금에 가까운 수준만 되돌려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같은 금리라도 정기예금보다 이자가 작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정기예금: 한 번에 맡겨 두는 금고

정기예금은 이미 가지고 있는 목돈을 한 번에 은행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1년 동안 1,000만 원을 넣고 건드리지 않겠다” 하고 약속하면, 그 기간 동안 돈을 그대로 두는 대신 만기 때 약속한 이자를 함께 돌려받는 구조입니다.

보통 은행에서 “예금”이라고 말할 때, 자유 입출금 통장이 아니라면 대부분 정기예금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롭게 입출금이 가능한 일상용 통장은 ‘보통예금’ 혹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이라고 부릅니다. 정기예금은 그와 달리, 정해진 기간 동안 돈을 묶어 두는 대신 금리를 더 높게 받는 상품입니다.

정기예금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목돈을 한 번에 예치합니다.
  • 이미 모아 둔 여유 자금을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이자를 받는 목적에 잘 어울립니다.
  • 예치한 전체 금액에 대해 약속한 기간만큼 이자가 붙습니다. 금융기관과 상품에 따라 단리, 복리 등 방식이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만기에 이자를 한꺼번에 받는 구조입니다.

정기예금의 장점은 같은 금리라면 정기적금보다 이자 총액이 더 크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전액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전체 기간 동안 모든 돈에 이자가 붙습니다. 또 돈을 현금으로 집에 두는 것보다 안전하고, 예금자 보호 제도 덕분에 일정 한도 내에서는 금융회사가 문제가 생겨도 원금과 이자를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목돈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또 정해진 기간 동안 돈을 묶어 두기 때문에, 갑자기 돈이 필요해졌을 때 자유롭게 꺼내 쓰기 어렵습니다. 중도 해지를 하면 약정했던 금리가 아니라, 훨씬 낮은 중도해지 금리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기적금과 정기예금,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두 상품은 겉으로 보면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쓰이는 목적과 방식이 꽤 다릅니다. 주요한 차이만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돈을 넣는 방식: 정기적금은 매달 나눠서, 정기예금은 한 번에 목돈을 넣습니다.
  • 필요한 시작 자금: 정기적금은 소액으로 시작 가능하지만, 정기예금은 어느 정도 규모의 돈이 필요합니다.
  • 이자 계산 구조: 같은 금리라면, 정기예금이 정기적금보다 만기 때 받는 이자가 더 많은 편입니다.
  • 목표: 정기적금은 앞으로 만들 목돈을 준비하는 용도, 정기예금은 이미 모인 목돈을 안전하게 굴리는 용도에 가깝습니다.
  • 유동성: 둘 다 중도 해지 시 이자 손해가 있지만, 자주 돈을 꺼내 쓸 가능성이 있다면 둘 다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요한 시점과 금액을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돈이 많지 않고, 앞으로 꾸준히 모으며 습관까지 잡고 싶다면 정기적금이 더 잘 맞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미 모아 둔 돈이 있고, 당장 쓸 계획은 없지만 위험한 투자는 부담스럽다면 정기예금을 활용해 볼 만합니다.

언제 정기적금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정기적금은 “앞으로 일정 기간 동안 돈을 모아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을 때” 특히 쓸모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 1년 뒤 여행 비용을 준비할 때
  • 몇 년 안에 전세 보증금이나 월세 보증금을 모으고 싶을 때
  •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같은 비교적 큰 금액의 물건을 사려 할 때
  • 부모님 선물이나, 자격증 학원비, 어학연수 비용 등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싶을 때

이럴 때는 먼저 “언제까지 얼마를 모을지”부터 정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1년 뒤에 120만 원이 필요하다면, 매달 10만 원씩 12개월짜리 적금을 드는 식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물론 이자까지 계산하면 실제로는 120만 원보다 조금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정기적금을 활용할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무리한 금액으로 설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욕심을 내서 월 납입액을 너무 크게 잡으면, 중간에 생활비가 부족해져서 결국 중도 해지하는 경우가 생기기 쉽습니다. 이자는 덤이라고 생각하고, 매달 꼭 지킬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을 잡는 편이 오히려 오래 가는 방법입니다.

언제 정기예금을 고려해 볼 만할까

정기예금은 이미 어느 정도 목돈이 있고, 당분간 이 돈을 사용할 계획이 없을 때 유용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입니다.

  • 몇 년 동안 모은 용돈, 아르바이트 수입, 상금 등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
  • 입시나 특정 계획까지 시간이 남아 있고, 그때까지는 크게 쓸 일이 없는 돈이 있을 때
  • 집안에서 일정 금액을 맡겨 주며 직접 관리해 보라고 할 때

정기예금을 고를 때는 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자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상품을 고른다고 해서, 너무 긴 기간으로 잡았다가 중간에 꼭 필요한 일이 생기면 결국 중도 해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금 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서, 현실적으로 건드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으로 선택하는 편이 좋습니다.

또 금리가 오르내릴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 같다면 너무 긴 기간에 한 번에 모두 묶기보다는, 여러 개로 쪼개어 기간을 나눠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금리가 더 좋아졌을 때 일부 금액이라도 더 높은 금리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정기적금과 정기예금을 함께 쓰는 방법

정기적금과 정기예금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활용하면 더 유용해지는 조합입니다. 가장 단순한 방식은 “먼저 적금으로 목돈을 만들고, 그다음에 예금으로 굴리는 흐름”입니다.

예를 들어 매달 20만 원씩 2년 동안 적금을 들어서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면, 만기 시점에 그 돈을 다시 1년짜리 정기예금으로 옮기는 식입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처음에는 작은 돈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큰 금액을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굴릴 수 있게 됩니다.

또 다른 방법은, 여러 개의 적금이나 예금을 각각 다른 만기일로 나누어 두는 것입니다. 흔히 “풍차 돌리기”라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1년짜리 예금을 한 번에 하나만 가입하는 대신, 3개월 간격으로 나누어 네 개를 가입하면, 1년 뒤부터는 3개월마다 하나씩 만기가 돌아옵니다. 이렇게 하면 계속해서 일정 부분의 돈은 높은 금리로 묶어 두면서도, 몇 달 간격으로 현금이 돌아오니 자금 운용이 훨씬 편해집니다.

비상금과 생활비, 어디까지 예·적금에 넣을까

정기적금과 정기예금은 안정적인 대신, 돈을 자유롭게 꺼내 쓰기에는 불편한 구조입니다. 그래서 모든 돈을 예·적금에만 묶어 두면, 갑자기 병원비나 긴급한 지출이 생겼을 때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당장 몇 달 안에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돈은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이나, 수시 입출금이 되면서도 이자를 조금이라도 주는 금융 상품에 두고, 그 외의 여유 자금을 예·적금에 넣는 식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상금으로 생각하는 금액은 언제라도 꺼낼 수 있는 곳에 두고, 정말 일정 기간 동안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 돈만 정기적금이나 정기예금으로 묶어 두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금리와 세금, 그리고 물가를 함께 생각하는 이유

예·적금 상품을 고를 때 많은 사람이 금리만 먼저 보게 됩니다. 물론 금리는 중요합니다. 같은 기간 동안 같은 금액을 넣는다면, 금리가 조금이라도 높은 상품이 이자를 더 많이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 은행과 금융회사의 상품을 비교해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이자에는 세금이 붙는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은 이자에 대해 일정 비율의 세금이 원천징수되기 때문에, 실제로 통장에 들어오는 금액은 안내된 이자보다 적습니다. 나이, 조건, 상품 종류에 따라 세금 혜택을 주는 상품도 있는데, 이런 경우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 이자가 더 많아집니다.

또 한 가지 놓치기 쉬운 부분은 물가입니다. 예를 들어 연 3% 이자를 받는 예금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물가가 연 4%씩 올랐다면, 숫자로는 돈이 늘었지만 실제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은 오히려 줄어든 셈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산 전체를 예·적금에만 두지 않고, 일정 부분은 다른 투자 상품에도 나누어 담습니다. 예·적금은 안전하게 지키는 용도로, 다른 투자들은 물가 상승을 따라잡기 위한 용도나 더 큰 수익을 노리는 용도로 역할을 나누는 식입니다.

나에게 맞는 선택을 위해 점검해 볼 질문들

정기적금과 정기예금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결국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면서 방향을 잡아 볼 수 있습니다.

  •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나 되는가
  • 앞으로 매달 얼마까지는 부담 없이 저축할 수 있는가
  • 이 돈을 언제쯤,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계획인가
  • 중간에 해지하지 않고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가
  • 안정성과 수익성 중에서 지금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답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상품이 더 잘 맞는지 윤곽이 드러납니다. 매달 일정 금액을 모아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정기적금이, 한동안 손대지 않을 목돈이 있다면 정기예금이, 그리고 둘 다 필요하다면 두 상품을 섞어서 설계하는 방식이 떠오르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자가 얼마나 나오느냐”만 보고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소비 패턴, 돈을 쓰는 성향, 앞으로의 계획을 조금씩 알게 되면, 예·적금을 어떻게 조합할지에 대한 감각도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상품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지금의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천천히 구조를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