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관련 뉴스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낯선 회사 이름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형 병원 이름도 아니고, 제약회사도 아닌데 기사 제목에는 꼭 ‘AI’와 함께 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유행처럼 쓰는 말인가 했지만,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니 실제 병원에서 쓰이는 인공지능 진단 프로그램, 수술을 돕는 로봇, 신약 후보를 찾는 알고리즘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의사가 직접 눈으로만 보던 영상이나 데이터를 이제는 컴퓨터가 같이 봐주고,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을 줄여 준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기술을 만드는 국내 기업들이 어디인지, 각자 어떤 방식으로 의료와 AI를 결합하고 있는지 정리해서 살펴보고 싶어졌습니다.
의료 AI 관련 기업을 이해할 때는 단순히 “이 회사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각각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병원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그리고 실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있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래에서 대표적인 국내 기업들을 소개하면서, 잘못 알려진 부분은 바로잡고,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은 조금 더 확장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국내 의료 AI 기업들이 하는 일의 큰 그림
의료에서 인공지능이 주로 쓰이는 영역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의료 영상 분석입니다. X-ray, CT, MRI, 조직 슬라이드 이미지 같은 것을 컴퓨터가 대신 혹은 함께 분석해서 의사가 놓치기 쉬운 부분을 알려주는 방식입니다. 폐에 작은 결절이 있는지, 유방 촬영 사진에서 암이 의심되는 부위는 어디인지, 뇌 MRI에서 뇌졸중 징후가 있는지 등을 빠르고 일관되게 찾아내려는 목적입니다.
둘째, 생체신호와 환자 데이터를 이용한 예측입니다. 심전도, 혈압, 맥박, 호흡 같은 수치뿐 아니라 전자 의무기록에 쌓인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심정지 위험이나 중환자실 이송 가능성 같은 것을 미리 예측해 보는 방식입니다.
셋째, 신약 개발과 수술 로봇 같은 특수 영역입니다. 신약 개발에선 AI가 방대한 화합물과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 유망한 후보 물질을 골라주고, 수술 로봇에선 AI가 영상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정밀한 수술 계획과 움직임을 돕습니다.
이제 이런 영역에서 국내 기업들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루닛: 암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겨냥하는 기업
루닛은 의료 영상 AI 분야에서 특히 암 관련 진단에 강점을 가진 기업입니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제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Lunit INSIGHT입니다. 흉부 X-ray나 유방 촬영 영상에서 폐암, 유방암 의심 부위를 찾아내고, 암 가능성이 높은 영역을 색으로 표시해 의사가 더 집중해서 보도록 도와줍니다. 이 제품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에서 인허가를 받았고, 일부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와 유럽 CE 인증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인허가 범위와 버전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 투자나 사용 여부를 결정할 때는 최신 자료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하나는 Lunit SCOPE입니다. 이 제품은 조직 슬라이드 이미지를 분석해 암세포와 주변 면역세포의 분포를 파악하고, 환자가 특정 항암제나 면역항암제에 잘 반응할 가능성이 있는지 예측하려고 합니다. 단순히 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넘어, 어떤 치료가 더 잘 맞을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바이오마커를 찾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루닛의 강점은 영상 기반 진단 보조에서 출발해 치료 전략 수립을 돕는 쪽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글로벌 의료기기 대기업과의 협업이 활발하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예를 들어 대형 영상장비 제조사와 파트너십을 맺어, 장비에 자사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함께 공급하는 방식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기업들은 연구개발과 인허가, 해외 진출에 초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단기간에 큰 이익을 내기 어렵습니다. 매출은 서서히 늘어나도 아직 적자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루닛처럼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회사는 공격적인 투자가 불가피해 재무 구조를 꾸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뷰노: 다양한 진단 분야를 아우르는 폭넓은 포트폴리오
뷰노는 특정 질환 하나보다 “여러 과를 동시에 아우르는 의료 AI 플랫폼”에 가깝습니다. 이 회사의 제품군은 꽤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VUNO Med-Fundus AI는 안저 사진을 분석해 망막 질환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줍니다. VUNO Med-LungCT AI는 폐 CT를 분석해 폐결절을 탐지하고 악성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VUNO Med-BoneAge AI는 성장기 아이의 손 X-ray를 보고 골연령을 판독하는 솔루션으로, 성장판 상태를 분석할 때 활용됩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영역은 생체신호 기반 예측 AI입니다. H-AI 같은 솔루션은 심전도, 혈압 등 연속적인 데이터를 분석해 심정지 위험을 미리 예측하려고 합니다. 이런 기술은 중환자실, 응급실, 일반 병동 어디에서나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병원 시스템과 잘 연동되는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뷰노의 특징은 제품 수가 많고, 영상의학과, 안과, 내과, 응급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를 동시에 겨냥한다는 점입니다. 또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이나 병원정보시스템(HIS)과 연동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어, 실제 병원 업무 흐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설계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이 많다고 해서 모두 큰 매출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각 제품이 실제 병원에서 자주 쓰이고, 건강보험 수가나 병원 예산 구조와 맞아떨어져야 안정적인 수익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뷰노를 포함한 이런 기업들을 볼 때는 단순히 개발된 제품 수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사용되는 병원의 수, 재계약 비율, 해외 매출 비중 같은 자료를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JLK: 뇌 질환에 집중하는 영상 AI 전문가
JLK는 여러 질환을 넓게 다루기보다는 “뇌”라는 특정 영역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표 제품으로 알려진 JBS-01K는 뇌 MRI, MRA 영상을 분석해 뇌경색, 뇌출혈, 혈관 협착, 알츠하이머와 관련된 변화 등을 찾아내는 데 사용됩니다.
뇌졸중은 특히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발병 후 몇 시간 안에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를 해야 후유증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AI가 영상 속 이상 신호를 빠르게 표시해 준다면, 의사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JLK는 이런 응급 상황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다만, JLK의 전체 매출 규모는 아직 루닛이나 뷰노에 비해 작은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뇌 질환 분야가 앞으로 더 커질수록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실제로 시장이 얼마나 빨리 성장할지, 보험 제도와 병원 도입 속도가 어떤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딥노이드: 의료 AI와 노코드 플랫폼의 결합
딥노이드는 의료 영상 진단 보조 솔루션과 함께, 노코드 방식의 AI 개발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점이 다른 기업과 조금 다릅니다. DEEP:MED 같은 제품은 폐결절, 뇌동맥류 등 다양한 영상에서 이상 부위를 찾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DEEP:PHI 같은 플랫폼은 프로그래밍을 잘 모르는 사람도 AI 모델을 만들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노코드 플랫폼의 장점은 병원이나 기업 내부에서 직접 자신들의 데이터와 환경에 맞는 모델을 만들거나 조정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병원마다 사용하는 장비나 환자군이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이런 차이를 반영해 AI를 세밀하게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때 노코드 플랫폼을 이용하면 데이터 과학자만이 아니라 의료진이나 실무자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딥노이드는 의료 영상뿐 아니라 산업용 AI 등 다른 분야로도 솔루션을 확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장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의료에 완전히 특화된 회사”와는 다르게 인식될 수 있습니다. 또 상대적으로 인지도와 실적이 크지 않기 때문에, 회사가 주장하는 기술력과 실제 병원에서의 사용 사례, 재무 상태를 따로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큐렉소: 수술 로봇과 AI의 융합
지금까지 소개한 회사들이 대부분 소프트웨어 중심이라면, 큐렉소는 하드웨어, 즉 수술 로봇과 재활 로봇을 앞세운 기업입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인공관절 수술을 돕는 큐비스-조인트, 척추 수술을 보조하는 큐비스-스파인 등이 있습니다.
이 수술 로봇들은 환자의 CT나 X-ray 영상을 바탕으로 수술 계획을 세우고, 의사가 계획한 대로 정확하게 절삭하거나 임플란트를 위치시키도록 도와줍니다. 이 과정에서 AI 기반 영상 분석이나 위치 추적 기술이 함께 사용됩니다. 이렇게 로봇 기술과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수술의 정밀도가 높아지고 수술 시간이나 회복 기간을 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큐렉소는 국내뿐 아니라 인도 등 해외 시장에도 수술 로봇을 공급하며 입지를 넓히고 있습니다. 다만 이 회사는 “순수 의료 AI 소프트웨어 기업”이라기보다 의료 로봇 기업에 AI 기술을 접목한 형태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의료 AI 관련주로 함께 언급되긴 하지만, 매출 구조를 보면 로봇 하드웨어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기타 주목할 만한 의료 AI 관련 기업들
의료 AI라고 해서 모두 영상 진단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방식으로 AI를 의료에 접목하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이루다는 피부과와 미용의료 장비를 만드는 회사로, 레이저, 고주파 기기 같은 제품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피부 상태를 자동으로 분석해 주거나, 시술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AI 솔루션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얼굴 사진을 촬영해 주름, 잡티, 홍조 정도를 분석하고, 어떤 시술이 효과적일지 제안하는 방식입니다.
아이센스는 혈당 측정기 등 자가진단 기기로 알려진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축적된 혈당 데이터와 생활 정보를 분석해, 개인마다 다른 혈당 패턴을 이해하고 더 맞춤형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AI 기술을 활용하려고 합니다. 단순히 기계를 파는 것을 넘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건강 관리 서비스 기업으로 확장하려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테카바이오와 스탠다임은 둘 다 AI를 이용한 신약 개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테카바이오는 딥매처라는 플랫폼을 통해 암 등 다양한 질환에서 유망한 신약 후보 물질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스탠다임 역시 자체 AI 플랫폼을 활용해 약물 재창출(이미 승인된 약물을 새로운 질환에 적용하는 방법)이나 새로운 화합물 설계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 두 회사는 영상 진단 보조와는 전혀 다른 영역이므로, “의료 AI” 안에서도 성격이 꽤 다릅니다. 진단 AI는 병원에서 바로 쓰이기 때문에 매출이 눈에 보이게 쌓일 수 있지만, 신약 개발 AI는 임상시험, 인허가를 거치느라 상용화까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립니다. 대신 한 번 큰 성과가 나면 수익 규모도 클 수 있습니다.
의료 AI 기업을 볼 때 꼭 생각해 볼 점들
의료 AI 기업을 이해하거나 관련 주식을 살펴볼 때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를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기술력과 실제 임상 효과입니다. AI가 논문이나 발표자료에서는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할 때 정말 도움을 주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FDA나 CE 같은 인허가를 받았는지, 국내 식약처 허가를 얼마나 획득했는지, 실제 병원에서 얼마나 자주 사용되고 있는지 등을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글로벌 파트너십과 해외 시장 전략입니다. 우리나라 의료 시장만으로는 규모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료 AI 기업은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겨냥합니다. 글로벌 의료기기 회사와의 협력, 해외 병원과의 파일럿 프로젝트, 다국가 인허가 전략 등이 잘 갖춰져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셋째, 재무 상태와 수익 구조입니다. 의료 AI는 연구개발에 돈이 많이 들고, 인허가 과정과 영업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상당수 기업이 당분간 적자를 기록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는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계획이 있는지, 추가 자금 조달이 필요한지 여부입니다.
넷째, 규제 환경입니다. 의료는 환자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규제가 강한 산업입니다. 각 나라의 인허가 기준, 개인정보 보호 규정, 보험 수가 정책 등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AI 솔루션이라도 어떤 나라에서는 보험이 적용돼 병원이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보험이 안 돼 도입이 더딜 수 있습니다.
다섯째, 경쟁과 차별화입니다. 의료 AI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분야라, 국내외 경쟁사가 매우 많습니다. 단순한 정확도 수치 경쟁을 넘어, 사용 편의성, 병원 시스템과의 연동성, 가격, 사후 지원, 데이터 보안 등 여러 요소에서 차별점을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의료 AI는 분명히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이고, 의료 현장을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동시에 아직은 여러 기업이 적자를 감수하며 기술과 시장을 동시에 개척해 나가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각 회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 재무적으로 버틸 체력이 있는지를 차분히 살펴보며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