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제도를 알게 되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한 청소년이 스스로 모은 돈과 국가에서 함께 모아준 돈으로 첫 번째 보증금을 내고 집을 구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려운 형편에서 자라면서도 조금씩 저축을 이어 갔고, 그 통장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말하던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단순히 돈을 모으는 통장이 아니라, 미래를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하나의 ‘기회’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역할을 하는 디딤씨앗통장, 정확한 이름으로는 아동발달지원계좌가 무엇인지, 누가 신청할 수 있는지, 실제로 어떻게 이용되는지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디딤씨앗통장이란 무엇인지
디딤씨앗통장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아동이 커서 사회에 나갈 때 필요한 기본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가 제도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모으기 쉽지 않은 돈을, 아동과 국가가 함께 모아가는 방식이라서 ‘디딤돌’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립니다.
이 제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동이 성인이 되었을 때 학비, 자격증 취득 비용, 기술 교육비, 집을 구할 때 필요한 전세보증금 등 꼭 필요한 돈을 스스로 마련해 갈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둘째, 가난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형편이 나쁘다고 해서, 평생 기회가 막혀 있지 않도록 최소한의 출발선은 마련해 주려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지원 방식은 간단합니다. 아동이나 보호자, 후원자가 통장에 돈을 저축하면 국가가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돈을 보태 주는 구조입니다. 현재 기준으로, 국가에서 월 최대 5만원까지 1:1 비율로 매칭해 줍니다. 예를 들어 아동이 한 달에 3만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3만원을 추가로 넣어주어 그 달에는 총 6만원이 쌓입니다. 아동이 5만원 이상을 저축하면 정부는 5만원까지만 매칭하기 때문에 한 달에 총 10만원까지 적립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누가 디딤씨앗통장을 신청할 수 있는지
대상은 만 18세 미만 아동 중에서 일정한 자격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인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또는 의료급여를 받는 가구의 아동입니다. 이런 가구는 생활비나 의료비를 국가에서 지원받고 있는 경우라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비교적 분명히 드러난 상태입니다. 다만 주거급여나 교육급여만 받는 경우에는 원래는 자동 대상이 아니지만, 지자체에서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심사를 통해 지원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아동입니다. 예를 들어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일시보호시설 등에 입소한 아동이 이에 포함됩니다. 가정과 떨어져 생활하는 아동이 나중에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의미가 큽니다.
셋째, 가정위탁을 받고 있는 아동입니다. 부모 대신 위탁가정에서 보호를 받는 아동도, 성장 후 자립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지원 대상입니다.
넷째,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지원을 받는 아동입니다. 이 경우에는 법에서 정한 기준에 맞는 한부모 가족이면서,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인 가구여야 합니다. 2024년에는 기준 중위소득 52% 이하라는 기준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 수치는 매년 바뀔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신청 시점에는 관할 행정복지센터에서 그 해의 기준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다섯째, 그 밖에 지방자치단체장이 “이 아동은 자립 준비를 위해 디딤씨앗통장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입니다. 가정 상황이나 여러 사정을 종합해 현장에서 판단하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점은, 실제 신청은 대부분 보호자가 대신 한다는 점입니다. 아동 스스로 서류를 챙기고 신청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친권자나 후견인, 시설장, 위탁부모 등이 신청인으로 나서게 됩니다.
통장 안에서는 돈이 어떻게 쌓이는지
디딤씨앗통장은 구조상 크게 두 종류의 돈이 함께 쌓입니다. 하나는 아동과 보호자, 후원자가 직접 넣는 돈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에서 대신 쌓아주는 돈입니다.
먼저, 아동 적립금입니다. 이 부분은 아동 본인, 보호자, 또는 후원자가 월 1회 이상 자유롭게 저축하는 금액입니다. 제도상으로는 월 50만원 한도 안에서 넣을 수 있지만, 정부가 1:1로 매칭해 주는 것은 월 5만원까지만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2만원만 저축해도 정부가 2만원을 보태주기 때문에 실제로는 4만원이 쌓입니다. 10만원을 저축했다면 그 중 5만원까지만 정부가 따라 넣어주고, 나머지 5만원은 아동의 자력 저축분으로 쌓이게 됩니다.
다음으로, 정부 매칭금입니다. 이 금액은 반드시 아동이 일정 금액을 저축했을 때에만 쌓입니다. 아동이 한 달에 아무것도 저축하지 않은 경우 그 달은 정부 매칭금도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넣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도 운영 과정에서 매칭 금액의 한도나 방식이 미세하게 조정될 수 있으므로, 실제 이용 시에는 관할 기관에서 최신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모인 돈은 아동이 미성년인 동안에는 함부로 꺼내 쓸 수 없도록 보호됩니다. 보호자가 생활비로 쉽게 인출해버릴 수 없고, 아동이 어느 정도 성장해 자립을 시작할 때까지 안전하게 쌓이는 구조입니다.
언제, 어떻게 이 돈을 사용할 수 있는지
디딤씨앗통장에 쌓인 돈은 평소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쌓다가, 일정 시기가 되면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만 18세가 지나면 통장 명의가 아동 본인 명의의 자립지원통장으로 전환됩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점부터 만 24세 사이에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용도는 제한이 있습니다. 아무 때나 현금처럼 꺼내서 소비할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목적일 때만 허용됩니다. 주로 인정되는 사용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대학 등록금, 전문학교 등록금, 각종 자격증 취득 비용 같은 학자금입니다.
둘째, 취업을 위해 필요한 기술 교육이나 직업훈련 과정의 수강료입니다.
셋째, 자립을 위해 집을 구할 때 필요한 전세금이나 월세 보증금처럼 주거 마련 비용입니다.
넷째, 작은 규모로 가게를 여는 등 창업을 준비할 때의 초기 자금, 그리고 꼭 필요한 의료비나 취업 준비를 위한 비용 등도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용도로 쓰겠다고 해서 바로 인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시·군·구청 담당자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적어도 어떤 학교에 진학하는지, 어떤 교육을 받는지, 어느 집에 들어갈 예정인지 등을 확인한 뒤에야 돈을 풀어 줍니다. 만약 규정에 없는 용도로 사용하려 한다면 정부에서 그동안 매칭해 준 금액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용 계획을 세울 때에는 담당 공무원이나 사례관리자와 상의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신청하는지
디딤씨앗통장을 신청하려면 먼저 아동의 주민등록상 주소지 기준으로 관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보통 주민센터라고 부르는 곳에 방문해야 합니다. 인터넷으로 신청서를 접수하는 방식이 일부 도입되기도 하지만, 서류 확인과 상담이 필요하기 때문에 직접 방문이 기본입니다.
신청하는 사람은 보통 아동의 친권자, 후견인, 아동복지시설장, 위탁부모 중 한 명입니다. 신청인은 본인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합니다.
준비해야 할 대표적인 서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아동발달지원계좌 신청서입니다. 이 서류는 행정복지센터에 비치되어 있고, 담당자의 안내를 받으면서 작성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신청인의 신분증입니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같은 기본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셋째, 경우에 따라 가족관계증명서나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청인과 아동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넷째, 개인정보 수집·이용 및 제공 동의서입니다. 이 서류에는 아동과 보호자의 개인정보를 제도 운영을 위해 활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읽어보고 동의해야 합니다.
대상 조건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서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동복지시설 아동인 경우에는 시설장이 발급하는 시설 입소 확인서가 필요합니다. 가정위탁 아동은 가정위탁 보호 확인서를 제출해야 하고,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대상인 경우에는 한부모가족 증명서와 함께 소득·재산 관련 서류를 요구받을 수 있습니다. 국민기초생활수급가구 아동의 경우에는 대부분 전산으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상황에 따라 수급자 증명서를 추가로 요구할 때도 있습니다.
실제 신청 절차는 대략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먼저, 관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받습니다. 이때 자신의 상황이 대상에 해당하는지,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구체적인 안내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준비한 서류를 제출하고 신청서를 작성합니다. 이후에는 지자체에서 자격 심사를 진행하는데, 이 과정은 실제로 약 2주 정도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사 결과는 대상자 선정 여부와 함께 통보되며, 선정이 확인되면 지정된 금융기관, 주로 우리은행 등에서 아동 명의로 디딤씨앗통장을 개설하게 됩니다. 통장이 개설된 뒤부터 아동이나 보호자, 후원자가 원하는 금액을 정해 매달 저축을 시작하면 됩니다.
실제로 이용할 때 알아두면 좋은 점들
이 제도는 기본 틀은 같지만, 세부 내용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매칭 지원 한도가 조정되거나, 대상 기준이 바뀌거나, 운영 방법이 개선되는 식입니다. 그래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그냥 예전 안내문을 믿기보다는, 현재 거주지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직접 문의해서 최신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디딤씨앗통장을 이용하는 아동에게는 담당 사례관리자나 사회복지사가 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통장 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로 상담을 하거나 자립 계획을 함께 세우고, 필요하면 복지 서비스와도 연결해 줍니다. 통장에 돈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사용할지에 대한 방향을 같이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신청 과정에서 아동의 미래 계획을 적어보는 자립지원계획서를 작성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직 어리더라도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지”, “언제쯤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같은 내용을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됩니다. 이 계획은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바뀌면 조정할 수 있으니, 처음부터 완벽하게 적어야 한다고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저축을 하다 보면 형편이 더 어려워지거나, 예상치 못한 일을 겪어서 한동안 저축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디딤씨앗통장 가입 자체가 취소되는 것은 아니고, 일정 기간 저축만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쉬는 기간에는 정부 매칭금도 함께 중단된다는 점은 기억해야 합니다.
주변에서 아동을 후원하고 싶은 개인이나 단체가 있는 경우 디딤씨앗통장에 후원금을 넣어주는 방식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런 후원은 아동 입장에서 큰 힘이 될 수 있으며, 지자체나 사회복지기관에서 중간에서 연계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디딤씨앗통장은 결국 “처음 출발할 때 완전히 빈손으로 시작하지 않도록 돕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매달 1만원, 2만원처럼 작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쌓이면, 몇 년 뒤에는 생각보다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돈을 스스로 관리해 보는 경험, 미래를 미리 계획해 보는 경험도 함께 따라옵니다. 그래서 이 제도를 잘 알고 필요한 곳에 제대로 안내하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디딤돌 하나를 놓아 주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