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스트라이크 판정 하나에 관중석이 술렁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스트라이크라 믿었는데 볼이 선언되면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마운드 위 투수는 잠시 웃음 섞인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그때는 단순한 오심 하나로 경기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언젠가는 사람의 눈이 아닌 기술이 이 부분을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그 막연한 상상이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실제 야구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ABS가 무엇인지부터 정리해 볼 필요
ABS는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을 센서와 카메라, 레이더 등으로 정밀하게 추적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는지 자동으로 판정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흔히 ‘로봇 심판’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사람을 대체한다기보다 심판의 판정을 보조하거나 일부를 자동화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스템은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작동합니다.
- 투구 순간부터 포수 미트에 도달할 때까지 공의 위치와 속도를 여러 지점에서 추적합니다.
- 타자의 키와 자세(스탠스)에 따라 개별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합니다.
- 공의 궤적이 그 존을 통과했는지 여부를 계산해 볼·스트라이크를 판정합니다.
- 이 결과가 심판의 이어폰이나 태블릿, 전용 수신기 등으로 전달되어 판정에 반영됩니다.
리그마다 세부 규칙과 활용 방식이 조금씩 달라서, 어떤 곳은 전 구종을 자동 판정에 맡기고, 어떤 곳은 ‘챌린지(이의 제기)’가 있을 때만 ABS를 사용하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KBO 리그: 가장 앞서 전면 도입한 사례
국내 야구를 지켜보면서 변화가 가장 크게 체감되는 부분이 바로 KBO 리그의 ABS 도입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계 방송에서 스트라이크 존 그래픽과 실제 판정이 엇갈릴 때마다 팬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쏟아졌지만, 2024년 시즌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꽤 달라졌습니다.
KBO 리그의 흐름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2023년: 퓨처스 리그(2군) 등에서 시범 운영을 진행하며 시스템 안정화와 심판·선수 적응 과정을 거쳤습니다.
- 2024년: 1군까지 포함한 정규 시즌 전 경기에서 ‘스트라이크-존 자동 판독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본격 도입했습니다.
운영 방식은 투구 궤적을 추적하는 장비가 설치된 뒤, 각 타자에게 맞는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고, 그 존을 통과한 공인지 실시간으로 판정하는 구조입니다. 이 판정 결과가 주심에게 전달되면, 주심은 이를 그대로 반영해 스트라이크 혹은 볼을 선언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존과 똑같이 사람이 손짓과 콜을 하지만, 그 뒤에는 이미 전자 판정이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초기에는 낮은 공이나 바깥쪽 공에서 선수들이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관례’처럼 넓게 혹은 좁게 받아오던 존이, 규정에 더 가깝게 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즌이 진행될수록 투수와 타자 모두 새로운 기준에 맞춰 전략을 조정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MLB: 마이너리그를 통한 단계적 실험
ABS 얘기를 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곳은 역시 미국 메이저리그입니다. 다만 메이저리그 본무대에서는 아직 전면 도입이 이뤄지지 않았고, 마이너리그에서 다양한 형태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흐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2019년: 트리플 A 일부 리그에서 ABS 시범 도입을 시작했습니다.
- 이후 확대: 2023년 전후로 트리플 A 다수 경기, 더블 A, 싱글 A 등 하위 리그로 확대하면서 운영 방식을 계속 조정했습니다.
- 혼합 방식 실험: 어떤 리그에서는 전 구종을 ABS로 판정하고, 다른 리그에서는 심판이 판정하되 타자·포수·투수가 제한된 횟수 내에서 ABS 챌린지를 요청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시험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ABS의 정확성과 경기 흐름, 팬들의 반응, 그리고 포수 프레이밍(공을 받는 기술)을 전제로 한 수비 가치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아직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에서 전면 도입을 확정한 것은 아니며, 도입 시기와 방식에 대해 신중하게 논의하는 단계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일본 프로야구(NPB): 신중한 관찰과 연구 단계
일본 프로야구는 현재까지 ABS를 정규 리그에 공식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며, 해외 리그의 사례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기술 테스트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NPB는 전통적으로 심판의 권위와 경기 흐름, 미묘한 존 운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강한 편이라, ABS 도입 여부를 둘러싼 의견도 다양합니다. 기술적으로는 도입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선수·팬·관계자들이 어느 수준까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리고 일본식 야구가 지켜온 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을 함께 고려하는 모습입니다.
기타 리그와 독립 리그에서의 시범 운영
미국의 독립 리그나 일부 해외 리그,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ABS를 시범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 리그는 상대적으로 규정 변경에 유연한 편이라, 새로운 시스템을 빠르게 시험하기 좋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리그는 과감하게 존을 규정에 최대한 가깝게 설정해 투수 위주의 경기를 유도하기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반대로 공격적인 타격을 장려하기 위해 존을 조금 더 보수적으로 잡는 실험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은 KBO나 MLB 같은 상위 리그가 제도를 설계할 때 참고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ABS 도입이 가져오는 변화와 과제
직접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판정에 대한 ‘논란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저 공이 어떻게 볼이냐, 심판이 오늘 이상하다”라는 반응이 많았다면, 이제는 “이 시스템의 스트라이크 존이 너무 기계적이지 않나”와 같은 식으로 화제가 옮겨가고 있습니다.
ABS 도입으로 기대되는 효과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장점
- 사람이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을 줄여 판정의 일관성과 신뢰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 팀과 선수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한 존’에 맞춰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 오심으로 인한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경기 지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 과제
- 타자 키와 자세에 따라 실시간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정확히 반영하는 기술적 정교함이 필요합니다.
- 포수 프레이밍과 같은 섬세한 수비 기술의 가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합니다.
- 완전 자동 방식과 챌린지 혼합 방식 중 어떤 모델이 각 리그에 더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경기장에서 ABS가 적용된 뒤 관중석의 반응을 들어보면, “애매한 공은 이제 기계가 알아서 해주니 속이 덜 답답하다”는 얘기와 함께, “그래도 예전처럼 심판마다 개성이 있는 존도 나쁘지 않았는데”라는 아쉬움이 함께 들려옵니다. 기술이 정확성을 높여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동안 야구가 쌓아온 ‘인간적인 요소’를 어디까지 남길 것인지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부분입니다.